사랑니와 성장판: 우리아이 사랑니, 키 성장 멈춤 신호일까?

사랑니와 성장판

딸아이의 입안을 들여다보다가 어금니 뒤쪽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새하얀 치아를 발견한 A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사랑니’가 ‘성장판’을 닫히게 해 키 성장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창 자라야 할 아이의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에 A씨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른 나이에 발견된 사랑니는 정말 우리 아이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비상 신호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사랑니와 성장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니와 성장판은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랑니가 나기 시작하는 것과 성장판이 닫히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인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 몸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관여하는 신체 기관, 작동 원리,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각기 다른 메커니즘을 따릅니다. 즉, 사랑니가 일찍 난다고 해서 성장판이 서둘러 닫히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니와 성장판 각각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사랑니’는 어떤 치아일까요?

사랑니는 큰 어금니 중 세 번째에 위치한다고 하여 ‘제3대구치’라고 불리는 치아입니다. 영구치가 모두 자리를 잡고 난 뒤, 가장 늦게 턱뼈의 가장 안쪽에서 맹출(萌出, 잇몸을 뚫고 나오는 현상)을 시작합니다.

  • 맹출 시기: 개인 차가 매우 크지만, 보통 만 17세에서 25세 사이에 나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발육이 빨라지면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시기에 맹출이 시작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관찰됩니다. 턱뼈에 공간이 충분하거나 다른 영구치의 발달 속도가 빠를 경우 이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 역할과 기능: 사랑니는 과거 인류가 질긴 음식을 씹어 먹던 시절에 필요했던 치아의 흔적으로, 현대에 와서는 그 기능이 대부분 퇴화했습니다. 오히려 턱뼈 공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비스듬히 나거나 잇몸 속에 매복되어 주변 치아를 밀어내거나 염증을 유발하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랑니의 발달과 맹출은 전적으로 치아와 턱뼈의 국소적인 발육 과정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2. ‘성장판’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성장판은 팔, 다리 등 긴 뼈의 양쪽 끝부분에 위치한 연골 조직으로, 세포 분열을 통해 새로운 뼈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성장판이 열려 있는 동안 이 부분에서 뼈가 길어지면서 우리의 키가 크게 됩니다.

  • 폐쇄 시기: 성장판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닫히기 시작합니다. 특히 성호르몬(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여성의 경우 초경을 시작하고 약 2~3년이 지나면 성장판이 대부분 닫히게 되며, 통상적으로 만 14~15세경이면 성장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듭니다. 남성은 이보다 늦은 만 16~17세경까지 성장이 이어집니다.
  • 역할과 기능: 성장판의 개폐 여부는 키 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는 뼈의 길이 성장을 담당하며, 치아의 발달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우리 몸의 전신적인 골격 성장과 호르몬 시스템에 의해 조절됩니다.

3. 왜 ‘사랑니=성장 멈춤’이라는 오해가 생겼을까?

사랑니와 성장판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가 널리 퍼진 이유는 두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청소년기 후반’이라는 큰 틀에서 일부 겹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니가 나는 시기(만 17세 이상)는 키 성장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과 맞물립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니가 나면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 인식이 ‘성장이 멈춘다’는 신호로 잘못 해석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초등학생에게 사랑니가 나는 것은 단순히 치아 발육이 조금 빠른 것일 뿐, 이것이 성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어 성장판을 닫히게 만드는 스위치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치아의 발육 시계와 신체 골격의 성장 시계는 서로 별개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키 성장에 중요한 4가지 요소

사랑니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진짜 우리 아이의 키 성장을 위해 부모님이 신경 써야 할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아이의 최종 키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됩니다.

  1. 유전적 요인: 부모의 키는 아이의 키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입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이 전부는 아니며, 후천적 노력을 통해 숨겨진 키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습니다.
  2. 균형 잡힌 영양: 뼈와 근육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 칼슘, 비타민D, 아연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도한 당분 섭취는 성장 호르몬 분비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3. 충분한 수면: 키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성장 호르몬은 깊은 잠을 자는 동안, 특히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됩니다.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4. 꾸준한 운동: 줄넘기, 농구, 스트레칭 등 성장판을 적절히 자극하는 운동은 뼈의 성장을 촉진하고 성장 호르몬 분비를 돕습니다. 무리한 운동보다는 꾸준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른 사랑니,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아이의 키 성장과 별개로, 이른 나이에 발견된 사랑니는 그 자체로 꾸준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 정기적인 치과 검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치과에 방문하여 파노라마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사랑니의 정확한 위치, 각도, 형태 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 전문가와 상담: 모든 사랑니를 반드시 발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곧게 자라서 다른 치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양치질 등 위생 관리가 잘 된다면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옆으로 누워서 나거나 잇몸 속에 숨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발치 시기를 결정해야 합니다.

마치며

우리 아이에게 나타나는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부모의 마음이 쓰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사랑니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성장이 멈추면 어쩌지?’라는 걱정보다는 ‘이제 치과 검진을 통해 꾸준히 관리해 줘야겠구나’라고 생각의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니에 대한 걱정은 치과 전문의에게 맡기시고, 부모님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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