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위기의 진짜 이유와 한국에 주는 경고

프랑스 위기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으며, 유력 인사들 사이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 또는 “이러다 그리스처럼 된다”는 충격적인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프랑스가 어쩌다 이런 위기설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요? 과도한 복지 지출 외 복합적인 원인을 분석해보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위기의 명백한 신호들

프랑스 경제의 위험 신호는 여러 경제 지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유럽 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114%에 달합니다. 이는 2010년 남유럽 재정 위기 당시 ‘피그스(PIGS)’라 불리며 구제금융을 받았던 포르투갈(당시 공식 부채 91%)보다 훨씬 나쁜 수치이며, 이탈리아(119%)와 비슷한 심각한 수준입니다.

더 큰 문제는 부채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프랑스는 현재 GDP의 5.8%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이 추세라면 2026년에는 국가부채가 GDP의 125%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프랑스 경제위기

둘째, 금융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그리스의 국채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국제 투자자들이 프랑스 정부의 상환 능력을 그리스보다 더 낮게 평가한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로레알, 에어버스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보다 국가의 국채 금리가 더 높아지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국가보다 기업을 더 신뢰한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인 셈입니다.

신용등급 하락과 국채 금리 상승은 국가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더 많은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눈덩이가 굴러갈수록 커지는 것처럼(스노우볼 효과), 프랑스의 재정은 스스로 악화하는 구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무엇이 프랑스를 위기로 몰았나?

흔히 프랑스의 위기를 과도한 복지 탓으로 돌리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합니다. 위기의 핵심 원인은 마크롱 정부의 정책 실패와 프랑스 경제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극심한 정치적 분열이 얽혀 있습니다.

1. ‘부자 감세’와 실패한 낙수효과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습니다. 자산 20억 원 이상 개인에게 부과하던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33%에서 25%로 인하했으며, 자본 소득세와 부동산 보유세도 완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정부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프랑스의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은 57.1%로 유럽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지출은 그대로이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감세의 목적인 ‘낙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기업들이 세금 감면 혜택으로 프랑스 내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업들은 그 돈으로 프랑스가 아닌 중국 등 해외에 공장을 짓는 데 집중했습니다.

부자들과 기업에 혜택을 줬지만, 그 과실이 프랑스 경제 전반으로 퍼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이 주로 부담하는 유류세를 인상하자,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며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파리 시위 현장

2. 복지보다 심각한 기업 지원과 구조적 문제

프랑스의 정부 지출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복지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랑스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조세 및 재정 지원금은 연간 2,110억 유로(약 346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한국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입니다. 국민들은 복지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 역시 재정 악화의 주범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경제는 디지털 혁명에 뒤처지면서 생산성 향상이 정체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높은 생산성 덕분에 짧은 노동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생산성이 낮아졌으면 노동시간을 늘리는 등 변화에 적응해야 했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풀어 난방비를 지원한 것도 재정 위기를 가속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3. 유로존의 역설과 극심한 정치 대립

프랑스가 사용하는 유로화는 위기의 양면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유로존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낮은 금리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 부채를 늘리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위기가 닥치자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 정치는 극심한 분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마크롱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위해 연간 71조 원 규모의 예산 삭감안을 내놓자 국민의 84%가 반대했습니다. 야당은 이러한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 정책에 결사반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념적으로 정반대인 극좌와 극우 세력이 손을 잡고 총리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내각을 붕괴시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재정 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프랑스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

프랑스의 위기는 결코 강 건너 불 구경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10~20년 뒤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경고를 던집니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GDP 대비 56% 수준으로 프랑스(114%)보다 낮아 보이지만,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저출산·고령화입니다. 프랑스는 합계출산율이 1.8명 수준임에도 고령화로 인한 재정 문제에 직면했는데, 합계출산율 0.7명대인 한국은 미래 세대의 부담이 훨씬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2050년 107%, 2060년에는 136%에 달해 프랑스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욱이 프랑스는 유로화라는 준기축통화를 사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이 도와줄 것이라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믿음이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며,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를 도와줄 주변국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정 건전성을 관리해야만 합니다.

마치며

프랑스의 사례는 인기영합적인 감세 정책과 지출 구조조정 실패가 국가를 얼마나 큰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 분열이 그 위기를 어떻게 심화시키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구조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위기는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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